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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교육학 사이 크게보기

교육과 교육학 사이

이론과 현실, 따로 교육은 그만합시다
저자

송재범

발행일

2023-02-28

면수

145X210

ISBN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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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6172-871-1 0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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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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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내공으로 우리 교육의 길을 묻다!

교직의 뜻을 품고 83학번 새내기로 사범대학의 문을 두드린 저자.
그 뜻을 실행으로 옮긴 지 40년이 되는 2023년, 저자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얻어터져 멍이 들고 비틀거리는 우리 교육, 그 교육을 부축해줄 목발을 다듬어 『교육과 교육학 사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교육에 선사한다. 이 목발의 도움을 받아 우리 교육이 똑바로 걷기를 기원하면서.
저자가 다듬은 목발은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있다. 40년간 다듬은 저자의 내공이 느껴진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학군장교로 군대에 가서도 교육장교라는 보직을 선택했다. 중?고교 교사와 학교장으로 보낸 현장의 오랜 경험은 내공 형성의 가장 큰 원천이다. 대학에서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했다. 교육전문직(서울시교육청 장학사?장학관, 민주시민교육과장, 교육연구정보원장)으로서의 교육 행정 경험은 내공의 넓이를 확장시켰다.
이렇게 학교 현장, 대학, 교육 행정을 모두 치열하게 경험한 저자는 작금의 우리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왜 “이론과 현실, 따로 교육은 그만합시다”를 외치고 있을까?


분열과 경계 짓기, 그리고 ‘교육과 교육학 사이’

그것은 한마디로 교육의 분열이다. 저자는 그 분열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배타적인 경계 짓기를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분열의 경계를 ‘교육과 교육학 사이’로 표현한다. 그리고 책 제목으로도 삼았다. 한마디로 ‘교육과 교육학 사이’란 초?중?고 학교 현장의 교육 현실과 대학에서 배우는 강단(講壇) 교육학 사이의 괴리를 말한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실상을 ‘교육’이라고 표현하고, 대학과 교육 연구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강의와 연구를 ‘교육학’으로 구분했다.

그런데 이 괴리는 현실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의 구별을 넘어 우리의 교육 현장에 수많은 분열과 갈등을 키우는 배양장이다. 이 괴리 속에서 경험 중심의 교육과 이론 중심의 교육학 사이에 외줄의 경계선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공간, 그 사이의 영토는 없다. 교수는 이론 중심의 교육학만 가르치고, 교사는 경험 중심의 수업만 하며, 교장(감)은 학교 경영만 하고 행정실은 교육 행정만 한다. 그리고 교육 당국은 지시와 관리만 하며, 교육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일반 국민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교육의 의미를 재단(裁斷)한다. 우리 모두 함께하는 공유지는 없다.

이런 현실에서 현장 종속의 교육도 아니고 이론 경도의 교육학도 아닌 그 중간 어디에서 꿈틀대는 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저자는 늘 그리웠다. 외줄의 경계선에 위태롭게 올라탄 교육과 교육학이 아니라, 양쪽의 협동 작업을 애타게 기다리는 공동의 영역에서 함께 뛰노는 교육과 교육학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서점에 화석처럼 전시된 ‘교육학 개론’이 아니라, 통섭의 마음으로 모든 분야를 넘나드는 ‘교육 총론’을 쓰고 싶었다. 그렇기에 저자의 문체는 특정 장르보다는 경계의 어디쯤 있는 ‘사이’의 글이다. 그 아름다운 공존을 저자는 “모든 경계에는 개나리가 핀다”로 표현한다.


분열의 ‘교육 깨기’에서 재건의 ‘교육 해체’로

분열의 경계 짓기를 극복하고 모든 경계에 개나리를 피우기 위해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바로 우리 교육을 ‘교육 깨기’가 아닌 ‘교육 해체’의 문법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다양한 교육 현안에 대해 논쟁을 넘어 갈등으로, 갈등을 넘어 투쟁으로 전개되는 교육 위기의 상황에 있다. 많은 전문가와 국민이 ‘기존의 낡은 교육으로는 안 된다.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라고 힘을 모아 외치는데도 왜 새로운 교육 담론은 등장하지 못할까? 저자는 우리 교육에 대한 논의가 ‘교육 해체’가 아닌 ‘교육 깨기’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교육 깨기’와 ‘교육 해체’란 무엇일까? 낡고 오래된 건축물을 처리하는 공사에 비유해보자. ‘깨기’가 낡고 오래되고 불필요한 건축물에 대한 철거작업 중의 모습이라면, ‘해체’는 낡고 오래되었지만 계속 필요한 건축물에 대한 복원작업 중의 모습이다. 여기서 해체의 대상이 되는 건축물이란 예를 들어 오래되어 일부만 남아 있는 문화유적 같은 것들이다.

‘깨기’와 ‘해체’에는 세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 작업의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깨기는 기존의 것을 없애는 데에 목적이, 해체는 기존의 것을 분해하여 새로운 모습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깨기는 낡은 것의 존재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지만, 해체는 문화유적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의 존재로 재탄생시키려는 작업이다. 둘째, 작업의 범위에서 차이가 있다. 깨기는 보이는 것 중심으로 작업하지만, 해체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고려하여 작업한다. 깨기는 눈에 보이는 깨뜨릴 대상만 신경 쓰면 되지만, 해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토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셋째, 작업의 속도에서 차이가 있다. 깨기에서는 속도감 있는 작업 진행을 요구하지만, 해체 작업에서는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 깨기는 부수어 없애는 것이기에 경제적 차원에서 속도 있는 작업을 요구하지만, 해체는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고려해야 작업하기에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깨기’와 ‘해체’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우리 사회에 폭풍처럼 등장하고 있는 교육 논쟁들은 ‘해체’보다는 ‘깨기’의 모습에 가깝다. 새로운 교육적 의미의 탄생을 꾀하는 해체보다는 기존의 교육적 시스템과 의미를 낡은 적폐로 재단하고 깨려고만 한다. 해체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 Derrida)는 단순한 부정이나 파괴가 아니라 토대를 흔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숨겨져 있는 의미와 성질을 발견하는 것을 해체로 보았다. 즉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재건을 전제로 한 ‘해체’를 말한다. 이에 빗대어 저자는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교육 깨기’가 아닌 ‘교육 해체’의 문법을 요구한다. 다양한 교육적 논의들이 깨기의 문법인 ‘싸울거리’나 ‘부술거리’가 아니라, 해체의 문법인 ‘생각거리’나 ‘만들거리’가 되어야 한다.


교육을 설명하는 자, 사랑하는 자

저자는 해체 작업의 하나로 교육 현장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상황을 파헤친다. 그 작업 중에 용기 있게 새로운 의미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교육과 교육학 사이’를 비롯해 금치몽자(禁治夢者) 18세, 사람 사랑하는 공부, 맞춤형 교육에서 주문형으로, 관계의 교육학, 시간을 파는 교장, 새로운 ‘학생론’, 환대의 교실, 추억을 담은 교실(추담 교실), 회복탄력성 리바이벌, 교육에 대한 예의, ‘남한산성’으로 간 교육, 모두를 향한 선택형 맞춤학교, 교육의 배신, 평가의 변별력과 킬러, 메타버스 시대 균형의 교육 등과 같은 다양한 용어를 해체의 도구로 활용한다.
그 신조어(新造語) 중에 교육을 설명하는 자와 사랑하는 자도 있다. 다양한 교육 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한다. 저자는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그들을 ‘교육을 설명하는 자’와 ‘교육을 사랑하는 자’로 구분한다. ‘교육을 설명하는 자’는 교육을 설명하기 위해서 교육을 탐구하지만, ‘교육을 사랑하는 자’는 교육을 사랑하기 때문에 교육을 탐구한다고. 그리고 교육에 대해 제대로 알면 알수록 교육을 더 사랑하게 된다고. 그러면서 묻는다. 지금 우리 교육에 대해 한마디 던지는 당신은 교육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교육에 대한 설명이나 평가만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진정으로 교육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인가?

교육에 대한 설명보다 사랑이 필요한 때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우리 교육에 대한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의 현실감각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다. 교직에 뜻을 품은 대학생과 수험생들에게 기계적 암기형 교육학이 아닌 생생한 현장형 교육학으로 읽히기를 바라는 글이다. 교사 교육자(teacher educator)로서의 교수들에게 지속적인 현장에 대한 이해를 부탁하는 글이다. 학교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교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변론으로 받아들여지길 희망하는 글이다. 교육을 사랑하는 자가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