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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요, 정약용 크게보기

궁금해요, 정약용

저학년 첫 역사 인물 3
저자

안선모

저자

한용욱

발행일

2017-05-10

면수

190*250

ISBN

104쪽

가격

9788974746841

가격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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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저학년 눈높이에 맞춘 ‘저학년 첫 역사 인물’ 시리즈
어린이들이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 속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얻고, 가치관을 정립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인물에 대한 책을 읽고 그 인물을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바른 인성을 위한 쉽고도 중요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인물의 이야기를 통하여 역사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배울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역사를 어려워한다면,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읽는 것으로 역사에 대한 쉬운 접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역사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도 중요한 일입니다. 
‘저학년 첫 역사 인물’ 시리즈는 우리 어린이들이 어릴 적부터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 바른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또한 어린이들이 ‘존경하는 인물’, 즉 인생의 멘토를 갖고 올바른 가치관 정립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 꿈을 갖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역사 속 인물들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어떤 마음가짐과 인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일들을 했는지를 저학년 눈높이에 맞게 동화로 구성하여, 재미있는 동화를 읽으며 인물들의 삶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학년 첫 역사 인물’ 시리즈의 첫 번째 권인 《궁금해요, 장영실》, 두 번째 권인 《궁금해요, 신사임당》에 이어 이번에 새로 나온 세 번째권은 《궁금해요, 정약용》입니다. 조선 시대 정조의 명을 받아 수원 화성을 축조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정약용은, 나라와 백성을 사랑한 실학자이자 개혁가입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정약용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동양 최고로 손꼽히는 수원 화성을 축조하다
경기도 수원시에는 수원 화성이라는 성곽이 있어요. 조선 시대 정조 때 지은 것으로, 세계 최초의 계획 신도시예요. 동양의 성곽 중 예술적으로나 과학적으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지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 수원 화성을 축조한 사람이 바로 정약용이에요.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은 조선 시대의 실학자예요. 정조는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나라를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정약용은 그런 정조의 손과 발이 되어 개혁 정책을 실행하였어요. 수원 화성 역시 정조의 개혁 정치를 위해 세워진 것이지요.
수원 화성을 세우기 위해 정약용은 거중기와 녹로 등의 기계를 만들었어요. 외국의 책을 참고하여 만들었지만 정약용이 새롭게 고안한 거중기는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적은 힘을 들이고도 큰 돌을 쉽게 나를 수 있었지요. 이러한 기계들로 인해 공사비용과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수원 화성과 거중기는 정약용의 수많은 업적 중 일부일 뿐이에요. 정약용은 새로운 세상을 꿈꾼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였으니까요.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매우 사랑하였지요. 정약용이 꿈꾼 새로운 세상은 바로 백성이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정약용은 다양한 저서를 남겼는데, 모두 백성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한 책들이었어요.

백성을 사랑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개혁가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정약용은 네 살 때 천자문을 깨치고 일곱 살 때부터는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시로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시들을 모아 《삼미집》이라는 시집으로 엮기도 했지요.
커서는 매형인 이승훈 덕분에 서양에서 들여온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았는데, 조선에 뿌리내린 성리학이라는 학문이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죽은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천주실의》라는 천주교 교리에 담긴 “창조주가 만든 인간은 모두 평등하여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다”는 글귀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천주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졌을 거예요.
황해도 곡산에서 부사로 있을 동안에는 쓸데없이 거둬들이던 세금을 줄이고, 잘못된 일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면서 많은 돈이 쌓이게 되었고, 그 돈으로 백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기도 했어요. 홍역이 돌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을 때는, 돈이 없어 의원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마과회통》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지요.
이러한 정약용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개혁가로서의 꿈은 임금인 정조와 백성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그로 인해 정약용을 시기하는 사람들 또한 늘어났어요. 정조는 정약용을 감쌌지만, 결국 정약용은 정조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지요.

유배지에서 써 내려간 수많은 책들
정조가 돌아가신 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어요. 천주교의 핵심인물이었던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용을 비롯하여, 정약용 집안의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어요. 그리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지요.
정약용 또한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을 가야 했어요. 그러나 정약용은 귀양살이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나라의 문제점을 고쳐 백성의 고통을 덜어 줄 책을 끊임없이 써 내려갔어요. 18년의 유배 생활 동안 《경세유표》《목민심서》 같은 대표적인 저서를  비롯한 수많은 책을 썼지요. 그리고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서 《흠흠신서》 30권을 완성하였습니다.
정약용은 낡고 썩은 법과 제도를 고치거나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은 타락하고 백성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신분의 평등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평등해야 참된 평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현실을 바꾸려는 개혁의 꿈을 잃지 않았던 정약용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구하려는 정신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정약용 미리보기.jpg